노숙자가 주인공인 영화라고 해서 그냥 흘려보낼 뻔했습니다. 제목 《쉘터》만 보고는 재난 서바이벌 장르쯤으로 짐작했거든요.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이 영화는 생존보다 '사람이 얼마나 무너지고 또 얼마나 버티는가'를 묻는 작품에 가까웠습니다. 기대 없이 틀었다가 어느 순간 멈추지 못하고 끝까지 본 영화였습니다.노숙자 조이, 첫 장면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이유폭행당하는 여성을 구하려다 오히려 두들겨 맞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저는 그 첫 장면에서 '이 영화 보통이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주인공 조이는 길거리 노숙자인데, 자신도 위험한 상황에서 이사벨이라는 여성을 지키려다 양아치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맙니다.이후 조이는 맨션 주차장으로 도망치고, 우연히 집주인이 자리를 비운 빈집에 숨어들게 됩니다. 체크카..
별점 3개. 제가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을 보고 나서 매긴 점수입니다. 앤 해서웨이와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을 맡고, 《잇 팔로우즈》로 유명한 데이빗 로버트 미첼 감독이 연출했다는 소식에 기대를 꽤 높게 잡았는데, 막상 보고 나니 그 기대가 독이 됐습니다. 분위기는 분명 있었습니다. 다만 그 분위기를 이야기가 따라가지 못했다는 게 솔직한 느낌이었습니다.전개 — 설정은 좋은데 이야기가 아쉬웠습니다영화의 기본 설정은 이렇습니다. 오크 스트리트라는 평범한 마을 전체가 갑자기 공룡 시대로 타임슬립(time slip)되면서 주민들이 생존과 귀환을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여기서 타임슬립이란 특정 공간이나 인물이 물리적으로 다른 시간대로 이동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SF 장르에서 오랫동안 써온 ..
솔직히 저는 극장을 나오면서 한동안 말을 못 했습니다. 좋아서가 아니라, 뭘 봤는지 정리가 안 돼서였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는 개봉 첫날 예매 60만 장, 관객 33만 명을 기록하며 올해 최고 흥행 출발을 알렸지만, 네이버 관객 평점 7점대 초반이라는 이례적 성적표를 함께 받아 들었습니다. 10년을 기다린 영화가 왜 이런 반응을 얻었는지, 제가 직접 극장에서 경험한 것들을 기반으로 풀어보겠습니다.초반 40분의 연출, 그리고 괴물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제가 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경이로움이었습니다. 1970~80년대 비무장지대 인근 가상 마을 호포항의 풍경은 역대급 미술과 제작비가 어디로 갔는지를 화면 하나하나에서 증명했습니다. 홍경표 촬영 감독의 카메라가 숲과 논밭, 산을 가로질러 나아가는..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나쁜 선택을 하면, 우리는 그걸 정말 '나쁜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영화 《프로젝트 Y》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질문이 바로 이겁니다. 한소희와 전종서, 두 배우가 함께 출연한다는 것만으로 기대가 앞섰는데, 직접 겪어보니 기대와는 또 다른 방향의 여운이 남았습니다.두 여자가 달리는 무대 — 배경과 맥락《프로젝트 Y》의 이야기는 이중생활(double life)이라는 구조에서 출발합니다. 여기서 이중생활이란 단순히 비밀을 숨기는 게 아니라, 낮의 얼굴과 밤의 정체가 완전히 분리된 채 공존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낮에는 꽃집 직원으로 고객들의 칭찬을 받고, 밤에는 유흥업소의 에이스인 '화육'으로 살아가는 예슬은 그 분리된 삶을 스스로 끊어내고 싶어 합니다. ..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제목부터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사랑과 고기'라니, 대체 어떤 조합인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106분을 다 보고 나서야, 이 제목이 얼마나 정확한 말이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도시 한편에서 폐지를 줍고 살아가는 세 노인이 고기 한 점을 둘러싸고 벌이는 이야기. 웃기고 서글프고, 보다 보면 이상하게 목이 멥니다.고기 한 점에 담긴 노년 빈곤의 현실영화는 장용 배우가 연기하는 우식이 마트에서 고기를 내려놓고 우유를 집어 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말 한마디 없는 그 행동 하나가 이 사람의 하루 전체를 설명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먹고 싶은 건 있지만, 살 수가 없는 상황. 그게 우식의 일상입니다.우식, 형준(박근형), 화진(예수정). 세 사람은 ..
솔직히 저는 제목만 보고 황금을 둘러싼 서부 활극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이건 19세기 말 스페인 카탈루냐를 배경으로 한 묵직한 탐욕의 연대기였습니다. 농장을 빼앗긴 여성이 원수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 복수를 도모하는 이야기인데, 통쾌함보다는 씁쓸함이 훨씬 오래 남았습니다.줄거리: 농장 하나가 무너뜨린 삶영화는 19세기 말, 스페인 카탈루냐의 외딴 마을 프라트벨에서 시작됩니다. 이 시기는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 농촌 사회를 급격히 재편하던 시기였습니다. 여기서 산업혁명이란 단순히 공장이 생겨나는 변화가 아니라, 기차가 마을에 들어오고 자본이 땅을 집어삼키기 시작하는 구조적 전환을 의미합니다. 영화 속에서도 마을에 기차가 놓이는 장면이 그 상징으로 등장하는..
비 오는 저녁에 혼자 극장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한동안 말을 잃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살목지가 그랬습니다. 죽은 이들을 불러들인다는 저수지를 배경으로, 통신 두절과 폐쇄 공간이 만들어내는 압박감이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짓눌렀습니다. 미장센과 음향 설계가 정교하게 맞물려 있었지만, 서사 밀도와 인물 설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남았습니다.첫 장면부터 느껴진 미장센의 힘극장 불이 꺼지고 첫 컷이 뜨는 순간, "이 영화 범상치 않다"는 감각이 왔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미장센이란 프레임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소 조명, 색채, 구도, 인물 위치를 의도적으로 설계해 감정을 유도하는 연출 기법을 의미합니다. 살목지는 이 미장센을 매우 의도적으로 다루고 있었습니다.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