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암 니슨 영화라고 하면 보통 딸을 찾아 유럽을 종횡무진하는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다. 저도 그 기대를 그대로 안고 《메모리》를 틀었는데, 처음 10분 만에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킬러라는 설정 —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려는 남자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훨씬 묵직하게 남았습니다.알츠하이머 킬러라는 설정,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영화는 멕시코 병원 청소부로 위장한 알렉스(리암 니슨)가 VIP 병실의 갑질러를 10초 만에 제거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 10초가 꽤 인상적이었는데, 동시에 "이 남자가 알츠하이머 환자라고?" 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알츠하이머(Alzheimer's disease)란 뇌 신경세포가 점진적으로 손상되면서 기..
솔직히 저는 '사채소년'이라는 제목만 보고 단순한 학교 복수극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돈과 학교 서열을 연결한 설정이 예상보다 훨씬 정교했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여운이 남았습니다. 넷플릭스·티빙 동시 1위까지 기록했다니,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작품입니다.줄거리와 권력역전 — 돈이 바꾼 학교 서열영화는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의 숙제를 대신 해주고 돈을 받는 '셔틀' 강진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제가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는 그냥 흔한 약자 설정이구나 싶었는데, 사채업자 '랑'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강진의 부모가 진 빚 때문에 랑에게 끌려다니던 강진은, 우연히 돈 봉투를 둘러싼 오해에 휘말립니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랑 밑에서 채권 추심을 배우기 시작하고, 이때..
잠깐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저는 《디 아일랜드 비트윈 타이즈》를 보면서 그 상상이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진짜 공포로 다가오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외딴 섬에 들어갔다 돌아오니 25년이 흘러버렸다는 설정 하나가 이 영화의 전부이자 한계이기도 했습니다.시간 왜곡이 만들어낸 공포, 그 설정의 힘영화관에서 나오면서 지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귀신보다 무서운 게 뭔 줄 알아? 시간이야." 그 말이 《디 아일랜드 비트윈 타이즈》를 보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됐습니다.영화는 1982년, 캐나다 해안가에서 조개를 줍던 어린 소녀 릴리가 작은 섬으로 향했다가 이틀 만에 발견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릴리는 자신이 실종됐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고를 때 별 기대가 없었습니다. 갤 가돗이 뛰고 또 뛰는 영화라는 것 정도만 알고 틀었는데, 84분 내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더 러너》는 아들이 납치된 변호사가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런던 도심을 가로질러야 하는 리얼타임 스릴러입니다. 설정 자체의 강도는 상당한데, 과연 그 설정을 끝까지 살렸는지가 핵심입니다.납치 설정이 만들어내는 압박감, 실제로 느껴봤습니다영화는 처음부터 꽤 영리한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런던 최고의 변호사 마이야 마틴은 싱글맘으로 아들 노아를 키우면서도 커리어를 유지하는 인물입니다. 아침 조깅을 하는 장면만 봐도 이 사람이 얼마나 자기 관리가 철저한지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아들한테서 온 줄 알았던 전화가 전혀 다른 남자의 목소리였고, 그 ..
2021년 영화 《졸트》의 주인공 린디는 분노가 임계치를 넘으면 폭력적 충동이 폭주하는 신경학적 이상 반응을 억누르기 위해 100만 볼트짜리 전기 충격 조끼를 착용하고 살아갑니다. 그 설정 하나에 이끌려 영상을 틀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설정의 완성도와 각본의 아쉬움이 생각보다 선명하게 나뉘는 작품이었습니다.전기 충격 조끼라는 설정, 처음엔 정말 신선했습니다린디의 상태는 의학적으로 간헐적 폭발 장애(IED, 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에 가깝게 묘사됩니다. 여기서 IED란 분노 자극에 비해 지나치게 과격한 공격적 반응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충동 조절 장애로, 단순히 성격이 나쁜 것과는 구분되는 신경생물학적 문제입니다. 영화는 이 설정을 꽤 진지하게 다루는 척합니다. 부모님의 ..
가볍게 웃을 영화 하나 틀었다가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경험, 저는 꽤 있습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천사로 나온다는 것만 보고 별 기대 없이 켠 이 딱 그랬습니다. 웃기긴 웃겼는데, 보고 나서 괜히 제 지갑 사정이 떠올랐달까요. 코미디 영화인데 생각보다 현실을 꽤 날카롭게 찌릅니다.코미디 장르 안에 숨겨진 현실: 영화가 선택한 배경영화의 설정 자체는 고전적인 판타지 코미디입니다. 천사 가브리엘(키아누 리브스)이 '전등 문자 담당 천사'라는 다소 황당한 보직을 맡고 있다가, 문자를 하며 운전하다 사고로 죽을 운명인 청년 아지를 구하는 임무를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설정만 놓고 보면 전형적인 판타지 코미디의 문법을 따릅니다.그런데 영화가 선택한 배경이 흥미로웠습니다. 아지는 긱 이코노..
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달성한 영화 가 정작 영화관에서는 기대 이하의 반응을 받았습니다. 제가 직접 보고 나서 든 첫 생각은 "이상하게 아쉽다"였습니다. 류승완 감독에 조인성, 박정민이라는 조합인데, 왜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웠을까요.장르적 긴장감 — '휴민트'라는 제목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영화 제목부터 전문 첩보 용어를 내세웠는데, 혹시 '휴민트(HUMINT)'라는 말이 낯설지 않으셨나요? 휴민트(Human Intelligence)란 기계나 전자 장비가 아닌 사람을 직접 포섭·운용·심지어 제거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사람을 도구로 삼는 냉혹한 정보전이 바로 휴민트의 본질입니다.제가 직접 봤을 때, 이 제목이 만들어 놓은 기대감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느낌이..
솔직히 저는 제목만 보고 황금을 둘러싼 서부 활극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이건 19세기 말 스페인 카탈루냐를 배경으로 한 묵직한 탐욕의 연대기였습니다. 농장을 빼앗긴 여성이 원수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 복수를 도모하는 이야기인데, 통쾌함보다는 씁쓸함이 훨씬 오래 남았습니다.줄거리: 농장 하나가 무너뜨린 삶영화는 19세기 말, 스페인 카탈루냐의 외딴 마을 프라트벨에서 시작됩니다. 이 시기는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 농촌 사회를 급격히 재편하던 시기였습니다. 여기서 산업혁명이란 단순히 공장이 생겨나는 변화가 아니라, 기차가 마을에 들어오고 자본이 땅을 집어삼키기 시작하는 구조적 전환을 의미합니다. 영화 속에서도 마을에 기차가 놓이는 장면이 그 상징으로 등장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