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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고를 때 별 기대가 없었습니다. 갤 가돗이 뛰고 또 뛰는 영화라는 것 정도만 알고 틀었는데, 84분 내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더 러너》는 아들이 납치된 변호사가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런던 도심을 가로질러야 하는 리얼타임 스릴러입니다. 설정 자체의 강도는 상당한데, 과연 그 설정을 끝까지 살렸는지가 핵심입니다.
납치 설정이 만들어내는 압박감, 실제로 느껴봤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꽤 영리한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런던 최고의 변호사 마이야 마틴은 싱글맘으로 아들 노아를 키우면서도 커리어를 유지하는 인물입니다. 아침 조깅을 하는 장면만 봐도 이 사람이 얼마나 자기 관리가 철저한지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아들한테서 온 줄 알았던 전화가 전혀 다른 남자의 목소리였고, 그 남자는 마이야의 위치까지 이미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초반 장면에서 가장 소름이 돋았던 부분은 바로 그 '이미 알고 있다'는 설정이었습니다. 상대가 모든 걸 보고 있다는 전제, 그러니까 감시(surveillance)라는 장치가 주인공의 모든 선택지를 막아버립니다. 여기서 감시란 단순히 카메라를 설치한 게 아니라 심박수, 이동 경로, 심지어 사생활까지 실시간으로 추적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설정 하나가 관객에게 주인공과 같은 답답함을 느끼게 만드는 핵심 장치입니다.
노아의 가방에서 그날 재판의 핵심 증인 정보가 나온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순한 납치극이 아니라 법정 싸움과 엮여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이거 생각보다 복잡한 이야기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가볍게 보려다 의외로 몰입하게 된 첫 번째 지점이었습니다.
- 아들 노아의 납치를 빌미로 증인 타파의 제거를 지시받는 마이야
- 협박자는 마이야의 심박수와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
- 협상도, 돈도 통하지 않는 일방적인 카운트다운 구조
갤 가돗의 롱테이크, 기대보다 훨씬 설득력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갤 가돗 하면 원더우먼의 이미지가 강해서 이번 영화의 '나약한 엄마' 연기를 반신반의하며 봤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고 나니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롱테이크(long take) 장면들, 즉 편집 없이 카메라가 배우를 오래 따라가는 촬영 방식이 상당히 많은데, 갤 가돗이 이걸 꽤 잘 버텨냅니다.
제가 주목했던 장면은 교회에서 잠깐 숨을 고르는 부분이었습니다. 지쳐서 무너지려다 다시 일어서는 그 짧은 감정선이 억지스럽지 않았습니다. 지하철에서 소매치기와 싸워 폰을 되찾는 장면, 구급대원의 손길을 뿌리치고 다시 뛰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체적으로 한계에 달한 사람이 그래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가 '아들'이라는 게 몸으로 전달됩니다.
감독 케빈 맥도날드는 이 영화를 리얼타임 스릴러(real-time thriller)로 연출했습니다. 리얼타임 스릴러란 영화 속 시간과 실제 상영 시간이 거의 일치하도록 설계한 구조로, 관객이 주인공과 같은 시간 압박을 느끼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본》 시리즈의 런던 추격전이 생각난다는 평도 나오는데, 저 역시 도심 로케이션 장면들을 보면서 그 느낌이 들었습니다. 실제 런던 랜드마크에서 진행된 촬영이라 도시를 훑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다만 84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 발목을 잡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마이야의 과거, 즉 소녀 시절의 챔피언 경력과 아버지 살해, 어머니 투옥이라는 굵직한 배경이 나오는데, 이게 너무 빠르게 스쳐 지나갑니다. 인물의 감정에 더 오래 머물렀다면 아들을 구하려는 절박함이 지금보다 훨씬 강하게 전달됐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반전 결말, 처음 보고 "이게 가능해?"라고 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꽤 과감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마이야가 벼랑 끝에서 자신의 죄를 처음으로 고백하는 장면이 있는데, 저는 이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진지한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도망쳐온 과거가 결국 자신을 따라잡는다는 주제가 여기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거든요.
그리고 결말의 반전이 나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증인 타파가 걸어 나오고, 모든 것이 마이야가 설계한 각본이었다는 게 밝혀집니다. 공포탄, 혈액팩, 철저하게 짜인 가짜 암살극이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 반전을 처음 봤을 때 "변호사가 이걸 혼자 다 짰다고?"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개연성(plausibility) 측면에서 의문이 생겼는데, 개연성이란 이야기 속 사건이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정도를 말합니다.
로튼 토마토의 평단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설정은 흥미롭지만 그 설정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는데(출처: 로튼 토마토), 제가 느낀 아쉬움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영화의 진짜 재미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무기가 되는 방식과 영리한 각본 장치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반전 자체로 봉합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노아의 기억력 덕분에 협박자를 찾아내는 장면, 악당이 감옥으로 가고 증인이 법정에 서는 마무리는 통쾌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보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결말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맞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분명히 갈립니다
《더 러너》를 보고 나서 제가 오래 생각한 건 영화 자체보다 "내 아이가 납치됐다면 나도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이 남는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완전히 허공에 뜬 이야기는 아니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영화연구소(AFI)는 좋은 스릴러의 조건으로 캐릭터의 내적 동기와 외적 압박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출처: AFI(미국 영화연구소)). 이 기준으로 보면 《더 러너》는 외적 압박은 충분히 설계됐지만 내적 동기의 깊이가 좀 얕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마이야의 과거와 죄의식이 더 충분히 탐구됐다면 단순한 추격 스릴러를 넘어섰을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화는 기대치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관람 만족도를 거의 결정합니다. 심리 스릴러나 치밀한 반전을 기대하면 아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84분 동안 런던 도심을 화면으로 훑으면서 빠른 추격과 깜짝 반전을 따라가는 재미를 찾는다면, 꽤 괜찮은 선택입니다. 비슷한 설정으로 비교되는 《폰 부스》나 《언스토퍼블》처럼 '한 가지 상황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방식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즐길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다시 울리는 발신번호 미표시 전화로 영화가 끝나는 방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후속작을 열어두는 오픈 엔딩(open ending)인데, 오픈 엔딩이란 이야기를 완전히 닫지 않고 관객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결말 방식입니다. 이게 속편 떡밥인지 아니면 그냥 여운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여운 자체는 꽤 오래 남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더 러너 영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2025년 기준 국내에서는 넷플릭스를 통해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플랫폼 상황은 변동될 수 있으니 현재 서비스 여부는 직접 검색해 확인하시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Q. 더 러너 결말이 무슨 뜻인가요? 마지막 전화는 뭐예요?
A. 영화 끝에 다시 울리는 발신번호 미표시 전화는 명확한 설명 없이 끝납니다. 후속 사건을 암시하는 오픈 엔딩으로 보는 시각이 많고, 속편 가능성을 열어둔 장치로 해석됩니다. 저도 이 부분이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Q. 갤 가돗 연기력 논란이 있던데 이 영화는 어떤가요?
A. 제가 직접 봤을 때 이 영화에서의 갤 가돗은 기존 이미지와 다른 방향을 보여줍니다.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감정 표현이 억지스럽지 않았고, 지치고 무너지려는 엄마의 모습이 설득력 있게 전달됐습니다. 연기력에 의구심이 있던 분들도 이 영화는 다르게 느낄 가능성이 있습니다.
Q. 더 러너 반전이 말이 되나요? 개연성이 있는 편인가요?
A. 솔직히 이 부분이 가장 갈리는 지점입니다. 변호사가 혼자 가짜 암살극을 설계했다는 반전은 통쾌하지만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의문이 드는 구멍이 있습니다. 스릴러 장르의 특성상 어느 정도 현실성을 내려두고 봐야 더 즐겁게 볼 수 있습니다.
결론
《더 러너》는 제가 기대치 없이 봤다가 84분을 꽤 집중해서 본 영화입니다. 완벽한 스릴러라고 하기는 어렵고, 이야기의 밀도나 후반부 우연이 겹치는 전개는 아쉬운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갤 가돗의 롱테이크 연기, 런던 도심을 배경으로 한 추격 장면, 그리고 변호사라는 직업이 무기가 되는 방식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치밀한 심리전과 탄탄한 서사를 원한다면 다소 허전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퇴근 후 가볍게 한 편, 빠른 전개와 통쾌한 반전을 원한다면 충분히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비슷한 리얼타임 스릴러 장르가 궁금하다면 《폰 부스》나 《언스토퍼블》과 비교해서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