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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예고편 보고 그냥 가볍게 웃고 나올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기분이 조금 묘했습니다. 웃겼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하기엔 좀 애매하고, 뭉클했냐고 물으면 그것도 딱 맞는 말은 아닌 것 같고. 영화 《와일드 씽》은 20년 만에 재결합하는 댄스 그룹 이야기인데, 그 애매함 자체가 이 영화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20년 만의 재결합, 설레야 할까요 씁쓸해야 할까요
영화는 199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3인조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이 강원 엑스포 유치 기원 콘서트를 계기로 다시 뭉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건데, 세 멤버가 흩어진 뒤 각자의 현실이 꽤 솔직하게 그려진다는 점이 첫 장면부터 눈에 들어왔습니다. 생계형 방송인, 재벌가 며느리, 빚을 안고 사는 솔로 가수. 화려했던 과거와 지금 사이의 간극이 웃음기를 품으면서도 어딘가 씁쓸합니다.
여기서 이 영화가 가져다 쓰는 장르 문법이 있습니다. 바로 리유니언 서사(reunion narrative)입니다. 리유니언 서사란 한때 함께였던 인물들이 해체 이후 각자의 삶을 살다가 어떤 계기로 다시 모이는 과정을 중심에 두는 이야기 구조를 말합니다. 한국 상업영화에서 이 구조는 꽤 자주 쓰이는데, 《와일드 씽》은 그 위에 Y2K 감성, 그러니까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패션·음악·문화 코드를 덧입혀서 특정 세대의 향수를 자극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 설정 자체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강동원과 엄태구, 박지현 세 사람의 호흡이 예상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특히 오정세가 등장하는 순간마다 극에 활기가 붙는 건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안무를 다시 맞춰가는 장면들은 뻔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따라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 생계형 방송인, 재벌가 며느리, 빚더미 솔로 가수로 흩어진 세 멤버
- 강원 엑스포 유치 기원 콘서트라는 재결합의 계기
- 강동원·엄태구·박지현의 예상 이상의 자연스러운 앙상블
- 오정세 등장 장면마다 살아나는 극의 템포
코미디로 웃기려 했는데, 타율이 낮았던 이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설정만 놓고 보면 웃음이 쏟아져 나와야 할 상황인데, 실제로 극장에서 크게 웃은 장면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대부분은 피식하는 선에서 마무리됐습니다. 코미디 영화의 웃음 밀도를 평가할 때 흔히 개그 타율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개그 타율이란 영화 안에서 의도한 유머 포인트 중 실제로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낸 비율을 뜻하는데, 《와일드 씽》은 이 타율이 생각보다 낮다는 게 아쉬웠습니다.
개연성 문제도 있었습니다. 20년 만에 재결합하는 서사이다 보니 각 인물이 왜 지금 이 무대에 나서는지 납득이 되어야 하는데, 각자의 사정이 다소 편의적으로 봉합되는 지점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후반부에 라이벌과 전 소속사 대표인 박 대표가 끌려 들어오면서 갈등이 급조된 느낌도 들었습니다. 정산 문제와 과거 금전적 갈등이라는 소재는 현실감 있는 긴장을 만들 수 있는 재료인데, 막상 그 감정이 쌓이기도 전에 정리되어버리는 인상이었습니다.
영화 평론 쪽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으로 장르 혼종(genre hybridity)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장르 혼종이란 코미디, 드라마, 음악 영화 같은 서로 다른 장르의 문법을 한 작품 안에 섞어 쓰는 방식을 뜻합니다. 이 방법이 성공하려면 각 장르가 서로를 강화해야 하는데, 《와일드 씽》은 코미디로 밀기엔 웃음이 약하고 드라마로 무게를 잡기엔 이야기가 가벼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영역에 걸쳐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경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손에 남는 게 흐릿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도 비슷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무대만큼은 이 영화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담았습니다
무대 직전까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이어지는데도 트라이앵글은 결국 원곡 그대로의 무대를 완성합니다. 랩과 댄스 퍼포먼스가 한데 터지는 그 마지막 장면이,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앞서 쌓인 과정이 다소 헐거워도, 이 한 장면이 영화 전체를 어느 정도 봉합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음악 영화에서 클라이맥스 퍼포먼스(climax performance)는 서사가 가장 압축되는 순간입니다. 클라이맥스 퍼포먼스란 극 중 인물들이 쌓아온 감정과 갈등이 공연이라는 형식을 통해 한꺼번에 폭발하는 장면을 가리킵니다. 이 장면이 설득력 있으려면 그 이전 서사가 충분히 받쳐줘야 하는데, 《와일드 씽》은 앞부분이 아쉬웠음에도 배우들의 몸이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그 빈자리를 상당 부분 채웠습니다. 세 사람이 다시 호흡을 맞추는 그 순간,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만은 세월에 닳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음악 면에서는 좀 아쉬웠습니다. 음악 영화를 표방하는 작품의 사운드트랙(OST) 완성도는 영화의 전반적인 몰입도와 직결되는 요소인데, 기억에 남는 넘버는 한두 곡에 그쳤습니다. 나머지 곡들은 장면을 채우는 데 그쳐 영화가 끝나도 흥얼거리게 되는 곡이 많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한국 박스오피스를 오래 분석해온 영화진흥위원회의 관객 조사 데이터를 보면, 음악 영화에서 관객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가 음악 자체의 인상도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이 부분에서 《와일드 씽》은 조금 더 욕심을 냈어야 했다고 봅니다.
타깃층 문제도 떠올랐습니다. Y2K 감성을 아는 세대에게는 반가운 코드들이 가득하지만, 정작 그 세대가 지방 엑스포 소재의 코미디를 보러 극장까지 발걸음을 옮길지는 별개 문제입니다. 한국 멀티플렉스 관람 통계를 보면 30~40대 관객이 주중 낮 시간대 관람 비중이 낮다는 점도 이 영화의 흥행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출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
자주 묻는 질문
Q. 와일드 씽 실제 재미있나요? 억지 웃음 많은 영화인가요?
A. 제가 직접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억지 웃음보다는 웃음 자체의 밀도가 낮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설정은 웃길 준비가 되어 있는데 막상 크게 터지는 장면은 많지 않아서, 코미디 기대치를 높게 잡고 가면 아쉬울 수 있습니다. 가볍게 보고 나올 영화를 찾는다면 충분히 시간이 아깝지 않은 선택입니다.
Q. 강동원, 엄태구, 박지현 세 사람의 케미스트리가 어떤가요?
A. 솔직히 예상보다 훨씬 자연스러웠습니다. 세 사람이 안무를 다시 맞춰가는 장면들이 뻔한 줄 알면서도 계속 따라 보게 되는 힘이 있었습니다. 특히 오정세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극 전체의 온도가 확 올라가는 걸 느꼈습니다.
Q. 음악 영화로서 OST는 어떤가요? 기억에 남는 노래가 많나요?
A.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습니다. 음악 영화를 표방하는 만큼 사운드트랙에 기대를 걸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흥얼거리게 되는 곡은 한두 곡에 그쳤습니다. 나머지는 장면을 채우는 역할에 머물렀다는 느낌이었습니다.
Q. Y2K 세대가 아니어도 즐길 수 있나요?
A. Y2K 감성, 그러니까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댄스 음악과 패션 코드를 모르면 세세한 향수 포인트는 덜 와닿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재결합이라는 리유니언 서사 자체는 세대와 무관하게 읽히는 이야기라, 그 서사에 집중한다면 세대를 가리지 않고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결론
《와일드 씽》은 장점이 단점을 가려주는 상업 영화입니다. 빈틈까지 메운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코미디 타율도 기대보다 낮습니다. 그런데도 마지막 무대에서 세 사람이 다시 호흡을 맞추는 장면이 주는 온기는 진짜였습니다.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만큼은 세월에 닳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 그 순간이, 제게는 이 영화 전체를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가 됐습니다.
화려한 반전보다 사람 냄새 나는 재회극을 기대한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선택입니다. 다만 날카로운 코미디나 탄탄한 드라마를 원한다면 기대치를 조금 내려놓고 극장에 가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개봉 직후 보고 왔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보기엔 나쁘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