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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에 별 기대 없이 틀었다가 생각보다 오래 앉아 있게 되는 영화가 있습니다. 《어브덕션》과 《인피니트》가 딱 그랬습니다. 둘 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데, 한 명은 납치된 아이였고, 다른 한 명은 전생의 기억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소재만 보면 꽤 탄탄한데, 과연 그 소재를 제대로 살렸는지가 관건이었습니다.

 

정체성 추격: 《어브덕션》이 잡은 것과 놓친 것

온라인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을 발견하는 장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실종 아동 데이터베이스라는 실제 존재하는 시스템에서 자신의 얼굴을 찾는다는 설정이 꽤 현실적으로 느껴졌거든요. 실종 아동 데이터베이스(Missing Children Database)란, 미국 국립실종착취아동센터(NCMEC)가 운영하는 전국 단위 수색 시스템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납치되거나 실종된 아이들의 사진과 정보를 축적해 신원을 추적하는 공식 플랫폼입니다(출처: National Center for Missing & Exploited Children). 영화가 이 시스템을 소재로 삼은 덕분에 초반 긴장감이 꽤 자연스럽게 쌓였습니다.

주인공 네이슨을 연기한 테일러 로트너는 처음부터 완성된 액션 히어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납치아동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당황하고, 집이 폭발하고, 부모님이 살해당하는 상황을 한꺼번에 맞닥뜨리는 인물입니다. 제가 보면서 그나마 몰입했던 부분이 바로 이 초반 혼란의 시퀀스(sequence)였는데, 여기서 시퀀스란 영화에서 하나의 사건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긴장을 구축하는 장면 묶음을 의미합니다. 당황하는 모습이 억지스럽지 않아서 오히려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후반으로 갈수록 아쉬움이 커졌습니다. 비밀 조직의 규모나 목적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그보다 '네이슨의 정체성 탐색'이 어느 순간 추격전의 배경으로 밀려버렸다는 점이 더 걸렸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보다 도망치고 싸우는 장면이 비중을 훨씬 더 가져가면서, 초반에 잡았던 긴장의 온도가 희미해졌습니다. 카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위험한 상황을 함께 겪는 것만으로 감정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구조, 즉 강요된 친밀감(Forced Intimacy)처럼 느껴지는 전개가 둘의 관계에 깊이 몰입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 실종 아동 데이터베이스라는 현실적 설정으로 초반 긴장감을 탄탄하게 구축
  • 테일러 로트너의 혼란스러운 초반 연기가 인물을 설득력 있게 만들어 줌
  • 후반부로 갈수록 정체성 서사가 추격 액션에 밀려 소재의 잠재력을 다 활용하지 못함
  • 악당 조직의 목적과 규모가 불충분하게 설명되어 긴장감이 지속되지 않음
요약: 《어브덕션》은 납치 아동이라는 현실적 소재로 흥미롭게 출발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정체성 탐색보다 추격 액션에 집중하면서 초반의 밀도가 흐려진다.

 

전생 기억: 《인피니트》가 꺼내든 환생 설정의 가능성

《인피니트》는 출발점부터 다릅니다. 주인공 에반은 자신이 왜 이런 기술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도 모릅니다. 전생의 기억이 단편적으로 올라오는데, 그 기억으로 일본도를 제작해 생계를 유지하고, 직감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기도 합니다. 제가 이 설정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건 단순한 슈퍼히어로물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잠재된 능력을 각성(awakening)해 가는 구조, 즉 처음부터 강한 인물이 아니라 자신 안에 무엇이 있는지 발견해 가는 인물이라는 점이 《어브덕션》의 네이슨과 묘하게 겹쳤습니다.

환생(reincarnation) 설정을 영화적으로 다루는 방식도 나름 신경 쓴 흔적이 보였습니다. 환생이란 한 영혼이 육체의 소멸 이후에도 다른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난다는 개념으로, 이 영화에서는 전생의 기억이 현생에 기술과 직관으로 발현된다는 방식으로 구체화됩니다. 악당 베서스트가 에반을 원하는 이유도 이 기억과 연결되는데, 에그(Egg)라 불리는 인류 종말 장치와 관련된 정보를 에반의 전생 기억이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의 긴장 구조가 꽤 촘촘해집니다.

코빅의 희생 장면은 제가 직접 봤을 때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신기술 장비를 이용해 다수의 적을 처리하고 스스로 최후를 맞는 전개는 감정적으로도 잘 설계됐습니다. 다만 이런 식의 카타르시스(catharsis), 즉 극적 긴장이 해소되는 순간이 후반부에 집중돼 있다 보니 중반부의 기억 회복 훈련 장면이 다소 늘어지는 느낌을 줬습니다. 속도를 조금 더 균등하게 배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크 월버그의 에반이 환생을 반복하며 다시 아티잔에게 발견되는 결말은, 이야기를 열린 결말로 남기면서도 그 세계관이 계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출처: IMDb - Infinite (2021)).

요약: 《인피니트》는 환생과 전생 기억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액션에 녹여냈으며, 코빅의 희생과 열린 결말이 인상적이지만 중반부 호흡 조절이 아쉬운 작품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어브덕션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실화 기반은 아닙니다. 다만 미국의 실제 실종 아동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설정에 활용했기 때문에 초반 장면이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영화가 현실 소재를 잘 활용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고, 실제 민감한 소재를 오락 영화에 가볍게 썼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초반 긴장감을 높이는 데는 효과적이었다고 봤습니다.

 

Q. 인피니트 속 '에그'는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A. 에그(Egg)는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는 종말 장치로 설정돼 있습니다. 악당 베서스트가 에그를 원하는 이유는 환생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모든 생명을 끝내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단순한 맥거핀(영화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도구적 소품)을 넘어 악당의 동기와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설정 자체는 꽤 탄탄합니다.

 

Q. 어브덕션과 인피니트 중 어떤 영화가 더 재미있나요?

A. 취향에 따라 다르다고 보는 게 정직한 답입니다. 《어브덕션》은 청춘 스릴러에 가깝고 가볍게 보기 좋은 반면, 《인피니트》는 환생이라는 독특한 설정과 더 넓은 세계관을 갖추고 있습니다. 제 경우엔 소재의 신선함 면에서 《인피니트》가 조금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Q. 어브덕션 결말에서 담임선생님이 살아있는 이유가 뭔가요?

A. 영화 안에서 명확한 설명은 제공되지 않습니다. 반전 요소로 넣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 부분을 깔끔한 반전으로 보는 분들도 있고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복잡한 설정을 짧은 러닝타임 안에 다 담으려다 보니 일부 설명이 생략된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

두 영화 모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소재로만 보면 꽤 흥미롭습니다. 다만 그 질문을 영화 끝까지 밀도 있게 끌고 가느냐의 문제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브덕션》은 납치 아동이라는 현실 밀착 소재를 정체성 탐색보다 액션 추격전에 써버렸고, 《인피니트》는 환생 설정을 흥미롭게 구성했지만 중반 호흡이 무너졌습니다.

그럼에도 가볍게 즐기는 액션 스릴러라는 전제에서는 두 작품 모두 무난하게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테일러 로트너의 청춘 에너지와 마크 월버그의 환생 액션을 기대한다면 기대를 너무 높이지 않는 것이 현명한 관람 전략입니다. 비슷한 '자아 발견형 액션'에 관심이 생긴다면, 세계관 구성이 훨씬 정교한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를 함께 보는 것도 좋은 비교가 될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ilX6tSsz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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