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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웨이 홈》 엔딩을 보고 나서 '이 다음 피터 파커는 어떻게 살까'라는 생각을 꽤 오래 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지워진 채 혼자 뉴욕을 지키는 스파이더맨. 그 설정 하나만으로도 이미 다음 편이 기다려졌습니다. 막상 《브랜드 뉴 데이》를 극장에서 보고 나니, 제가 기대했던 것과 결이 조금 달랐습니다. 더 외롭고, 더 어둡고, 그리고 의외로 더 깊은 영화였습니다.
거미화 — 인간이 거미가 되어가는 과정을 4년치로 압축한 설정
영화가 시작되고 피터의 일상이 펼쳐지는 순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창고 문에 빼곡하게 엉켜 있는 거미줄, 밥도 제대로 안 먹고 잠도 줄여가며 하루하루를 싸움으로 채우는 모습. 이게 제가 알던 장난스럽고 수다스러운 스파이더맨이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이 영화가 중심에 놓은 개념이 바로 '거미화(Spider-ification)'입니다. 거미화란 피터 파커가 4년간의 완전한 고립 끝에 인간적인 습관과 감각을 잃어가고, 생물학적으로도 거미에 가까운 존재로 변모해가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능력이 강해지는 파워업이 아니라, 인간성이 희석되는 퇴행에 가깝다는 점에서 기존 스파이더맨 영화들과 결이 다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웹슈터(Web-Shooter) 없이 손목에서 유기 거미줄이 직접 분비되고, 야간 시야와 독침 능력까지 생깁니다. 웹슈터란 원래 피터가 직접 개발한 기계 장치로, 인간 발명가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도구입니다. 그게 사라지고 몸에서 저절로 거미줄이 나온다는 건, 피터가 '만드는 인간'에서 '본능으로 움직이는 거미'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원작 코믹스에서 이미 한 번 다뤄진 설정이기도 합니다. 피터가 사망 직전 고치 속에서 부활하며 유기 거미줄, 야간 시야 등의 능력을 획득하는 에피소드는 2004년 마블 코믹스에 등장한 바 있습니다(출처: Marvel Comics, The Amazing Spider-Man). 이번 영화는 그 설정을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맥락에 맞게 재해석했습니다. MCU란 마블 스튜디오가 구축한 공유 세계관으로, 개별 캐릭터들의 서사가 하나의 연결된 우주 안에서 전개되는 프랜차이즈 구조를 뜻합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피터가 밤새 자신도 모르게 방 전체를 거미줄로 뒤덮어놓고 아침에 스스로 놀라는 시퀀스였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 몸에서 먼저 나온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던지는 핵심 질문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거미가 되려는 인간'과 '인간으로 남으려는 거미' 사이에서 피터가 선택해야 한다는 주제 말입니다.
- 유기 거미줄 분비: 기계 웹슈터 없이 손목에서 직접 생성 — 인간 발명가 정체성의 상실을 상징
- 야간 시야 및 프레데터 모드: 흰자가 사라지고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지는 신체 변화
- 독침 능력 획득: 원작 코믹스 '다른 피터(The Other)' 에피소드에서 차용한 설정
- 비자발적 거미줄 분비: 수면 중 방 전체를 덮는 행동 — 본능이 의지를 앞서기 시작한 신호
진 그레이의 합류 — MCU 뮤턴트 사가의 첫발이 여기서 시작된 이유
진 그레이가 이 영화에 등장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왜 하필 스파이더맨 영화에?'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극장에서 보고 나니, 이 선택이 꽤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 그레이는 엑스맨의 창단 멤버이자 강력한 염력(Telekinesis) 사용자로, 훗날 다크 피닉스(Dark Phoenix)로 각성하게 될 존재입니다. 염력이란 물리적 접촉 없이 정신의 힘만으로 물체나 생명체를 움직이는 초능력을 말하며, 진 그레이는 그 강도가 사실상 무제한에 가깝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진이 사용하는 주요 능력은 '마인드 점프(Mind Jump)'입니다. 마인드 점프란 자신의 의식을 타인의 몸으로 옮겨 일시적으로 그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으로, 진은 이 능력을 이용해 스콜피오, 퍼니셔, MJ, 헐크의 몸을 차례로 옮겨 다닙니다. 흥미로운 건 스파이더맨은 이 마인드 점프가 통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라는 설정입니다. 거미 감각(Spider-Sense)이 정신적 침입 자체를 차단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진의 서사는 단순한 악당 조력이 아닙니다. 디오디씨(D.O.D.C., Department of Damage Control)에 납치된 언니 세라를 찾기 위해 이용당하는 피해자에 가깝습니다. 디오디씨란 마블 세계관에서 초능력자들을 관리·통제하는 정부 기관으로, MCU에서는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처음 등장한 바 있습니다(출처: Marvel Studios, Spider-Man: Homecoming). 이번 영화에서는 이 기관이 초능력자들을 실험하고 착취하는 구조가 본격적으로 드러납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 — 선의를 가진 사람이 시스템에 이용당하는 이야기 — 는 엑스맨 원작이 수십 년째 다뤄온 테마와 정확히 겹칩니다. '다른 존재는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로 선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방식. 진 그레이를 통해 MCU가 뮤턴트 사가의 첫 단추를 어떻게 꿰려는지가 이 영화에서 어느 정도 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언니 세라의 죽음을 알게 된 진이 내재된 모든 능력을 각성하는 장면은, 다크 피닉스의 전조로 읽히기에 충분했습니다.
각성 — '둘 다'라는 선택이 왜 이 영화의 전부인가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폭주한 진이 피터에게 묻는 장면이 있습니다. "친구도 가족도 사치야. 넌 둘 중 하나야 — 거미, 아니면 인간." 그 물음에 피터가 내놓는 답이 "난 둘 다"입니다. 말로만 들으면 너무 단순하게 들릴 수 있는데, 제가 직접 극장에서 그 장면을 봤을 때는 생각보다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직후 이어지는 초각성(Hyper-Awakening) 시퀀스가 이 영화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초각성이란 극도의 감정적 압박 상태에서 억눌려 있던 능력이 한꺼번에 해방되는 현상으로, 진 그레이의 다크 피닉스 각성과 유사한 개념입니다. 피터의 경우 폭주하지 않는 방식으로 각성한다는 점이 대비를 이룹니다. 슬로우모션 속에서 핸드(Hand) 조직원들을 제압하면서도 단 한 명도 죽이지 않는 선택 — 그게 거미와 인간이 공존하는 순간의 형태였습니다.
이 각성 구조를 이해하는 데 브루스 배너(Bruce Banner), 즉 헐크의 역할이 큽니다. 배너는 이 영화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대학 물리학 교수로 재직하며 피터의 조력자가 됩니다. 핵심은 배너가 억제칩(Inhibitor Chip) 개념을 피터에게 힌트로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억제칩이란 몸 안의 생물학적 변화를 인위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삽입하는 장치로, 배너 본인이 헐크 변신을 제어하기 위해 슈왈크(Shwalc) 기술로 시도했던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입니다. "좋고 나쁨을 누가 정하냐"는 배너의 물음은, 피터에게 던지는 말이면서 동시에 배너 자신이 평생 안고 살아온 질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배너 캐릭터에 생각보다 많이 이입했습니다.
퍼니셔(Punisher)와 피터의 관계 변화도 이 각성 서사와 맞닿아 있습니다. 4년간 피터가 퍼니셔의 목숨을 여러 번 구해준 사실이 복선처럼 깔려 있고, 그 퍼니셔가 마지막에 피터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장면은 원작 코믹스 오마주입니다. 하지만 그 직후 퍼니셔가 피터를 직접 병간호하고 눈물까지 보이는 장면은, 이 시리즈에서 이 캐릭터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이었습니다.
다만 제 솔직한 평가로는, 이 각성 장면 자체가 워낙 강렬해서 전반부의 빌런 위협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졌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클라이맥스의 무게를 뒷받침하려면 그 전에 '이번 상대는 진짜 넘기 어렵다'는 긴장감이 더 길게 이어졌어야 했는데, 중반부 흐름이 조금 늘어지면서 그 감각이 희석됐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에서 피터 파커가 손목에서 거미줄이 나오는 이유가 뭔가요?
A. 《노 웨이 홈》 이후 4년간의 완전한 고립과 인간관계 단절이 피터의 몸에 누적된 결과입니다. 이른바 '거미화' 현상으로, 원작 코믹스의 'The Other' 에피소드에서 차용한 설정입니다. 기계 웹슈터 대신 유기 거미줄이 분비된다는 것은, 피터가 인간 발명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Q. 진 그레이는 왜 스파이더맨 영화에 나오는 건가요? 엑스맨이랑 연결되는 건가요?
A. 네, MCU가 뮤턴트 사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첫 단추로 진 그레이를 이 영화에 배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진은 이번 영화에서 마인드 점프 능력으로 등장하며, 마지막에 각성하는 장면은 훗날 다크 피닉스로 이어질 복선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스파이더맨과 뮤턴트 사가를 동시에 전진시키는 이중 구조입니다.
Q. 브루스 배너(헐크)가 이 영화에서 왜 나오나요? 싸우는 장면도 있나요?
A. 배너는 이번 영화에서 전투보다는 조력자 역할로 나옵니다. 자신의 몸 안에서 헐크를 억누른 경험을 바탕으로 피터에게 억제칩 개념을 제시하는 캐릭터입니다. 다만 세비지 헐크(Savage Hulk)로 폭주하는 장면이 있어 액션도 일부 포함됩니다. 정신병원으로 실려 가는 엔딩은 이후 시리즈에서 중요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Q. 네드와 MJ는 피터를 기억하게 되나요?
A. 이번 영화에서 완전한 기억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네드가 피터의 핸드 사인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기억이 돌아온 게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근육 반응에 가깝습니다. MJ는 피터의 정체를 모르면서도 그를 계속 돕는 역할을 하며,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다시 형성될지는 이후 시리즈로 넘어갑니다.
결론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기대했던 것보다 조금 더 어둡고, 조금 더 느리고, 조금 더 쓸쓸한 영화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톤의 영화는 극장에서 볼 때보다 집에서 다시 볼 때 오히려 더 깊이 읽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미화, 억제칩, 마인드 점프 같은 설정들이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내 안의 다른 나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향해 촘촘하게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빌런의 위협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중반부 흐름이 다소 늘어진다는 점은 제가 실제로 보면서 느꼈던 한계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역할을 '둠스데이와 시크릿 워즈로 가기 위한 피터의 설정판'으로 본다면, 해야 할 일을 제법 잘 해낸 편입니다. '역시 스파이더맨이다'라는 감탄보다는 '이 피터 파커, 앞으로가 더 궁금하다'는 기대를 가지고 극장을 나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