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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그냥 쉽게 볼 수 있는 B급 공포 오락물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2021년 리부트작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가 흥행과 평가 양쪽에서 처참하게 무너진 걸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또 비슷하게 끝나겠거니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예상과는 꽤 다른 지점에서 생각할 거리가 생겼습니다. 잘 만들었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 영화는 게임 원작 영화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실험에 가까웠습니다.
게임성: 영화가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기 시작했을 때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은 평범한 퀵 배달원이 라쿤시티의 병원으로 백신 재료를 배달하러 갔다가 생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입니다. 설정 자체는 단순합니다. 그런데 이 단순함이 오히려 영화 전체를 게임과 닮은 구조로 만들어버립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장소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위기가 등장하는 패턴이 너무나 익숙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복도를 지나면 괴물이 나오고, 방을 열면 또 다른 위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게임에서 스테이지(Stage)를 클리어하는 구조, 즉 한 구역을 통과하면 다음 구역의 장애물이 등장하는 반복적 설계를 영화가 그대로 따라갑니다. 여기서 스테이지 구조란 공간을 단계적으로 이동하면서 각 구역마다 독립적인 장애물을 배치하는 게임 레벨 디자인 방식을 말합니다.
처음 한두 번은 긴장됩니다. 제 경험상 초반 30분은 몰입도가 꽤 높았습니다. 주인공이 강한 전사가 아니라 그냥 버티는 사람이라는 설정도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통신이 끊긴 병원 안에서 혼자 상황을 파악해가는 전개도 팽팽했습니다. 그런데 이 패턴이 후반까지 반복되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90분도 안 되는 러닝타임임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에는 '다음엔 어떤 괴물이 나오겠지'라는 예측이 먼저 와버렸습니다.
아이템 활용 방식도 게임적입니다. 원작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서 익숙한 아이템 수집과 조합 전개가 영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됩니다. 아이템(Item)이란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수집해 특정 상황을 돌파하는 데 쓰는 소도구를 말하는데, 이 영화는 그 개념을 영상으로 옮겨서 원작 팬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줍니다. 게임 시리즈를 잘 아는 분들에게는 이 부분이 확실히 반갑게 느껴질 겁니다.
다만 이 게임성이라는 특징은 어떤 관객에게는 장점이 되고, 어떤 관객에게는 뚜렷한 단점이 됩니다. 저는 솔직히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완급 조절이 거의 없고, 인물 묘사보다 상황 전개에 무게가 쏠린 탓에 주인공 브라이언에게 감정적으로 깊이 이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왜 이 사람이 끝까지 버티는지에 대한 내적 동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 사건만 이어졌습니다.
- 공간 이동마다 새 위협이 등장하는 스테이지 구조 — 초반엔 긴장감, 후반엔 예측 가능성으로 이어짐
- 원작 게임의 아이템 수집·조합 전개를 영화 언어로 구현 — 팬서비스 효과
- 1인극에 가까운 미니멀 각본으로 인한 반복감 — 영화적 완급 조절 부재
- 주인공의 내적 동기 설명 부족 — 감정 이입에 걸림돌
공포연출: 점프스케어는 많고, 서스펜스는 적다
잭 크레거 감독은 《바바리안(Barbarian)》과 《웨폰(Weapon)》으로 공포 장르에서 이름을 알린 연출자입니다. 이 영화를 선택할 때 가장 기대한 부분이 바로 그 이름이었습니다. 역대 《레지던트 이블》 영화 시리즈 중 가장 무서운 작품이 나올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개봉 당일 로튼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 시리즈 최초로 90점대 후반의 프레쉬 점수를 기록했다는 소식은 그 기대를 더욱 키웠습니다. 로튼토마토 프레쉬 점수란 비평가 다수가 긍정적으로 평가했을 때 부여되는 신선도 지표로, 60% 이상이면 '신선함(Fresh)', 75% 이상이면 '인증된 신선함(Certified Fresh)'으로 분류됩니다(출처: Rotten Tomatoes).
감독 특유의 혼돈스럽고 강렬한 호러 시퀀스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몇몇 장면은 확실히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크리쳐(Creature) 디자인, 즉 괴물의 외형과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설계한 부분에서 잭 크레거의 감각이 느껴졌습니다. 크리쳐란 공포 장르에서 인간이 아닌 변형된 생명체를 통칭하는 용어로, 이 영화에서는 바이러스에 의해 변이된 존재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점프스케어(Jump Scare)의 비중이 생각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점프스케어란 갑작스러운 영상이나 큰 소리로 관객을 순간적으로 놀라게 하는 공포 연출 기법인데, 이 영화는 이 방식에 상당히 의존합니다. 순간순간은 분명히 놀랍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오래 남는 공포, 즉 심리적 불안감이나 서스펜스(Suspense)가 쌓이는 느낌은 상대적으로 약했습니다. 서스펜스란 결말을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지속되는 상태를 말하는데, 훌륭한 공포 영화는 이 긴장이 잔상으로 남습니다.
또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크리쳐가 등장하는 타이밍이었습니다. 《바이오하자드》 게임 시리즈는 초반에 서서히 공포 분위기를 쌓아가다가 적 존재를 단계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유명합니다. 이 영화는 그 긴장 축적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서, 크리쳐가 너무 이른 시점에 노출됩니다. 처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긴 했지만, 이후 등장할 때마다 그 임팩트가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임과 달리 마지막 보스전의 존재감도 앞선 장면들보다 특별히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공포 영화의 무서움을 측정하는 방식에는 여러 기준이 있는데,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일회성 놀람 반응보다 지속적인 불확실성이 더 강한 공포 반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이 영화는 전자에 집중하고 후자는 다소 소홀히 한 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은 기존 시리즈와 연결되나요?
A. 밀라 요보비치 주연 시리즈나 2021년 라쿤시티와는 별개의 리부트 작품입니다. 세계관을 새로 시작하며 기존 시리즈를 몰라도 보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 다만 결말에서 라쿤시티가 사실상 괴멸되는 방향으로 마무리되어 직접적인 속편 제작은 어렵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Q. 원작 게임 바이오하자드를 모르면 재미없나요?
A. 원작 게임을 모르더라도 생존 호러 장르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템 수집·조합이나 게임 특유의 공간 구성을 알고 있다면 팬서비스 요소에서 추가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게임 지식이 없다면 오히려 이 부분이 단순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Q. 잭 크레거 감독의 전작 바바리안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무섭나요?
A. 제 경험상 심리적 공포와 서스펜스의 밀도는 《바바리안》이 더 높습니다. 《0번째 밤》은 점프스케어와 크리쳐 액션 중심이라 순간 놀람은 강하지만, 보고 나서 오래 남는 불안감은 《바바리안》 쪽이 훨씬 강했습니다. 두 작품의 공포 방식 자체가 다르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Q. 영화 상영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지루하지 않나요?
A. 상영시간은 100분 미만, 약 94분 수준입니다. 전개 속도가 빠른 편이라 초중반은 지루하지 않습니다. 다만 스테이지 구조가 반복되는 후반부에서는 패턴이 예측되면서 다소 늘어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짧은 러닝타임이 오히려 이 단점을 어느 정도 상쇄해줍니다.
결론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은 게임의 재미를 영화로 옮기는 실험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둔 작품입니다. 게임 특유의 공간 이동과 아이템 활용, 크리쳐와의 조우를 영상으로 구현하는 데는 분명히 성공했습니다. 원작 팬이라면 익숙한 요소들이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경험 자체가 즐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끝내 아쉬웠던 건 영화만이 만들 수 있는 공포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지속적인 긴장감, 주인공의 감정적 설득력, 오래 남는 불안감. 이 세 가지가 조금 더 단단했다면 별점 3개가 아닌 4개짜리 영화가 됐을 겁니다. 강렬한 생존 액션과 빠른 전개를 원한다면 볼 만한 선택입니다. 단, 《레지던트 이블》이라는 이름에서 깊이 있는 공포를 기대했다면, 그 기대치를 조금 조정하고 보시기를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