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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 1억 달러 이상이 투입됐는데도 조용하게 개봉한 영화가 있습니다. 《도그스타: 마지막 희망》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왜 이렇게 상영관이 없지?"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이름과 그 제작 규모가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용한 출발이었습니다.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영화가 왜 극장에서 봐야 하는지를 뒤늦게 실감했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인데 왜 이렇게 조용한가 — 장르적 기대와 현실의 간극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란 문명 붕괴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장르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재난이 이미 끝난 상태에서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설정이라고 하면 대부분 《나는 전설이다》나 《매드맥스》처럼 긴박하게 쫓기거나 싸우는 장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제가 직접 예고편을 봤을 때도 그런 방향으로 기대했고, 초반 10여 분을 보면서 "이거 생각보다 액션이 없는데?"라는 당혹감이 잠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그 기대를 일부러 비틀고 들어옵니다. 역병으로 인류의 99%가 사라진 이후, 주인공 킥(제이콥 엘로디)은 반려견 제스퍼와 함께 폐허가 된 콜로라도를 오가는 비행기 수리공으로 살아갑니다. 긴박한 생존보다는 무너진 세상 안에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모습이 더 오래 화면에 남습니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 《더 로드》가 절망의 극한을 그린다면, 이 영화는 그 희망 버전에 가깝다고 홍보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출처: IMDb, Dog Stars 작품 정보).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건 킥과 제스퍼의 관계였습니다. 사람이 거의 사라진 세계에서 개 한 마리가 갖는 무게감이 단순한 동물 등장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둘이 함께 걸어가는 장면에서 "이게 생존 영화가 맞나, 아니면 외로움에 관한 영화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작비 규모와 감독의 이름값에서 오는 기대치와 실제 영화의 온도가 이렇게까지 다를 줄은 몰랐습니다.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의 비평가 점수가 다소 박한 것도 이 간극 때문입니다. 로튼 토마토란 영화 비평가들의 긍정 평가 비율을 퍼센트로 집계하는 북미 최대 영화 리뷰 집계 사이트를 말합니다. 예고편이 액션 스릴러처럼 편집되어 있어서 실제 영화의 여유로운 템포와 충돌이 생기고, 이 간극이 "기대를 배신당했다"는 반응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뉴욕 타임스도 스릴러 요소는 있지만 이야기가 산만하고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평했습니다(출처: The New York Times). 하지만 제가 보기엔 이 영화를 스릴러로 보러 가면 실망하고, 웨스턴 감성의 여정극으로 보러 가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어 나옵니다.

  • 예고편은 보지 않고 가는 것이 더 좋습니다. 액션 영화로 오인하게 만드는 편집이라 기대치가 잘못 설정됩니다.
  • 전형적인 빌런이 없습니다. 적대 세력보다 인물 간의 가치관 충돌과 감정의 변화가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 이탈리아에서 촬영했지만 배경은 콜로라도주 덴버입니다. 경비행기 비행 장면은 대형 스크린에서 볼 때 체감이 완전히 다릅니다.
  • 킥과 백리(조시 브롤린)의 관계는 희망을 품은 로맨티스트와 생존 중심의 염세주의자가 함께 살아가는 조합으로, 전형적인 영웅-조력자 구도와는 다릅니다.
요약: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긴박함 대신 웨스턴 감성의 여유로운 리듬을 선택한 영화로, 예고편과 실제 분위기의 간극이 크기 때문에 어떤 기대를 갖고 보느냐가 감상의 질을 결정합니다.

 

리들리 스콧 연출의 강점과 이 영화가 아쉬운 지점 — 비주얼리즘과 서사 밀도

리들리 스콧은 비주얼리스트(visualist) 감독으로 분류됩니다. 비주얼리스트란 이야기의 논리적 짜임새보다 화면이 주는 시각적 인상을 연출의 핵심으로 삼는 감독 스타일을 말합니다. 《블레이드 러너》, 《에이리언》, 《글래디에이터》처럼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매번 강렬한 시각적 세계관을 구축해온 경력이 있습니다. 제가 이 감독 작품을 꽤 봐온 입장에서, 적어도 "볼거리 없이 끝나는 영화"는 없다고 느껴왔습니다.

《도그스타: 마지막 희망》에서도 그 강점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경비행기가 폐허가 된 도시 위를 낮게 날아가는 장면, 사람이 사라진 뒤 자연에 잠식되어 가는 건물들,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 위에 얹힌 광활한 하늘 풍경은 제작비가 어디에 쓰였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제 경험상 이 부류의 영화는 집 스크린으로 보면 절반 정도밖에 전달이 안 됩니다. 큰 화면 앞에 앉아서 비행 장면을 볼 때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동시에 오는 묘한 불안감은 영화관이 아니면 체험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아쉬운 지점도 있습니다. 킥이라는 인물이 왜 이렇게 살아가게 됐는지, 죽은 부인과의 관계가 현재 그의 감정에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좀 더 파고들었다면 캐릭터에 대한 감정 이입이 훨씬 깊어졌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보면서 킥에게 완전히 몰입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반려견 제스퍼가 영화에서 중요한 감정 축을 담당하는데, 킥과 제스퍼의 일상을 더 오래 보여줬더라면 제스퍼를 잃는 장면의 충격이 훨씬 컸을 것입니다.

디스토피아(dystopia)적 세계관 안에서 유토피아(utopia)를 찾아가는 구조도 흥미롭습니다. 디스토피아란 체제의 억압이나 문명의 붕괴로 인해 인간다운 삶이 불가능해진 세계를 가리키는 개념이고, 유토피아란 반대로 이상적인 공동체나 삶의 조건이 실현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 영화는 무전 신호를 따라 도착한 곳이 처음엔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실은 거짓된 풍요로 포장된 공간임을 보여주고, 결국 킥이 진짜 이상향을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한다는 방향으로 마무리됩니다. 설정은 탄탄한데, 그 과정에서 느껴져야 할 서스펜스(suspense), 즉 결과를 알 수 없는 긴장 상태가 생각보다 약하게 전달된 것이 아쉬웠습니다. 라디오 무전 신호를 따라가는 장면에서 "이걸 믿어도 되는 건가"라는 불안감이 관객에게 좀 더 강하게 전달됐다면 이야기의 밀도가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았던 건 재난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킥과 제스퍼가 황량한 길을 걸어가는 모습, 그것 하나였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의 핵심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그 장면 말고는 선명하게 떠오르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이 제가 느낀 가장 솔직한 한계이기도 합니다.

요약: 리들리 스콧 특유의 시각적 완성도는 충분히 발휘됐지만, 캐릭터의 내면 서사와 이야기 긴장감이 아쉬운 영화로, 그럼에도 극장에서 봐야 제값을 하는 작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도그스타 마지막 희망, 액션 영화인가요?

A. 예고편만 보면 액션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웨스턴 감성의 여정극에 가깝습니다. 긴박한 액션보다 인물들의 관계와 분위기가 중심인 영화라, 빠른 전개를 기대하면 초반에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예고편은 보지 않고 극장에 가는 쪽을 권합니다.

 

Q. 원작 소설 《더 로드》를 읽어야 이 영화가 이해되나요?

A. 이 영화의 원작은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가 아니라 피터 웰러의 소설 《도그스타》입니다. 홍보 문구에서 《더 로드》의 희망 버전이라고 소개된 것이 혼동을 주지만, 원작을 읽지 않아도 영화 감상에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에 익숙하다면 설정은 금방 따라갈 수 있습니다.

 

Q. OTT로 봐도 괜찮을까요, 꼭 극장을 가야 하나요?

A.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는데, 경비행기 비행 장면과 광활한 하늘 풍경은 대형 스크린이 아니면 절반 정도밖에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도 극장 음향에서 훨씬 잘 살아납니다. 상영 기간이 길지 않을 수 있으니, 보실 생각이라면 극장을 먼저 노리는 쪽이 낫습니다.

 

Q. 킥과 백리는 어떤 관계인가요?

A. 둘은 폐허가 된 비행장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친구 관계입니다. 킥은 희망을 믿는 로맨티스트, 백리는 타인을 믿지 말라고 가르치는 생존 중심의 염세주의자로, 가치관의 차이가 영화 내내 은은하게 마찰을 만들어냅니다. 전형적인 영웅과 조력자 구도가 아닌,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두 사람의 동거에 가깝습니다.

 

Q. 반려견 제스퍼가 영화 끝까지 나오나요?

A.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제스퍼를 잃는 사건이 영화의 중요한 전환점 역할을 합니다. 반려견이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킥이 혼자 버텨온 이유 자체였다는 점에서, 이 장면이 감정적으로 상당한 무게를 가집니다. 반려동물에 감정 이입을 많이 하시는 분이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결론

《도그스타: 마지막 희망》은 리들리 스콧의 걸작 반열에 올라갈 영화는 아닙니다. 서사 밀도와 캐릭터 깊이에서 분명한 한계가 있고, 장르적 기대를 가지고 갔다가 실망하는 관객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영화를 보길 잘했다고 느끼는 이유는, 폐허가 된 세상에서 사람이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는지를 조용하고 아름답게 보여주는 영화가 생각보다 드물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결국 마지막에 남는 건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이 영화는 폭발이나 추격 없이 하늘과 개와 음악으로 전합니다. 빠른 전개보다 여운을 선호하는 편이라면, 그리고 극장에서 볼 기회가 있다면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작품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2wESwKa7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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